WALKIN' VOL.2
대중음악에서 좋은 음반의 조건이란 아마도 동시대의 미학을 밀도 있게 담은 곡과 연주, 통찰력을 가진 프로듀서의 기획과 역량, 타협이나 모방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스타일과 방향성의 교집합쯤에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PEEJAY의 WALKIN’ Vol.2는 2017년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프로듀서의 앨범으로 이러한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앨범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의 꾸준한 작업량과 폭넓은 활동 영역은 오랜 시간 동안의 경험과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베테랑으로서의 커리어를 묵직하게 빚어냈고, 이 화려한 참여진을 아우르기에 어색함이 없다. 이 앨범은 태양, KUSH, 크러쉬, 자이언티, MASTA WU, 빈지노, B-Free, 오혁, QIM ISLE, KUMA PARK, 윤석철, 정유종에 이르는 참여진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로, 단순한 ‘참여진'이 아닌 개별 아티스트들의 매력을 만끽하는 즐거움의 지점이 있다. 단지 훌륭한 비트를 만드는 프로듀서가 아니라 아티스트들에게서 최고의 능력을 끌어내고 함께 ‘걸어가듯' 자연스러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은 매우 전통적인 프로듀서의 영역에 있는 노하우와 케미스트리라 할 수 있는데, 서로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는 ‘선수'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게임이 흥미로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프로듀서의 앨범이지만, 송라이터로서의 앨범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세련된, 텐션감 있는 진행과 캐치한 멜로디 라인을 뽑아내는 것은 PEEJAY의 전매특허. 하지만 지나치게 꾸미거나 남발하지 않고 집중력 있는 구성과 틀을 지켜가고 있는 것 역시 그의 곡 들만이 지니고 있는 힘이다. 반복해서 들어도 그 아름다움이 퇴색되지 않는 훌륭한 멜로디와 그루브의 질감,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동시대의 사운드에 대한 통찰력이 담긴 곡들이기에 어느 지점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다. 로컬 씬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대중음악에서의 힙합과 R&B, 재즈 씬은 과거 어느 때보다 서로를 향해 열려있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WALKIN’ Vol.2는 지난 십수 년간의, 좁다면 좁지만 한편으로는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있던 한국의 힙합과 R&B씬의 각 지점들을 아우르는 결과물이다.